겨울 시골버스의 후문이 왼쪽으로 열리고 정경이 동공에 밀려들어왔다. 어제 눈이 많이 왔다더니 확실히 그런 것 같다. 눈이 하얀 카펫을 깐 것처럼 땅을 가득 덮었다. 전봇대만 규칙적으로 서있는게 쓸쓸했다. 발자국이 드문드문 찍혀있는게 묘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이 발의 주인들은 모두 어딜 향했을까. 버스에선 나오지 않았던 입김이 목도리 사이로 새어나와 하늘로 ...
골목에 있던 개를 죽였다. 사위가 죽은 듯 잠잠하다. 살점과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는 과도가 힘없이 끝을 떨어트린다. 피가 칼 끝에 잠시 맺혔다 톡 하고 떨어진다. 이젠 한낱 고기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개의 피 웅덩이에 자그마한 물결이 인다. 남자는 바람막이에 튄 피를 툭툭 털어냈다. 피를 질퍽하게 밟고 있는 신발의 밑창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남자는 발을 떼...
장거리 연애는 갈 길도 멀다, 윤중은 자꾸만 흐물거리는 초점을 애써 잡으며 술집 내부를 아무 이유 없이 둘러봤다. 한 쪽에선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하며 ‘바니바니’를 연신 외치고 있었고, 한 테이블 건너 다음 자리에서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키득거리며 얘기를 하는 남자 둘이 보였다. 그 옆 테이블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면 맞은편에서 한껏 과장된 표정으로 ...
낡은 극장의 막이 내리듯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이 꽉 찬 탓에 그 어느 벽에도 붙어 서지 못하고 민성은 엉거주춤하게 닫힌 문 앞에 섰다. 그는 예전에 읽은, 지금은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심리학 서적에서 사람은 심리적 거리를 본능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글 따위를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문을 앞에 두고 타인을 주위에 두른 그는...
대학가 술집이 다 같았다. 안주와 술은 저렴했고 내부는 시끄러웠다. 네온사인의 고주파 소리는 유리벽 너머에서 들어와 술집의 소음과 함께 지윤을 자극했다. 식탁은 알바의 성의 없는 행주질에 알 수 없이 끈적거렸다. 조명은 탁했고 폭음을 종용하는 야릇한 분위기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술집 밖의 슬금슬금 내리는 함박눈은 집에 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았고 얼...
1. 비릿한 맛이 날 때까지 입술을 물어 뜯는 건 지나간 연인과의 추억을 곱씹는 것과 같았다. 끝은 항상 비리고 썼다. 2. 이력서 끄트머리에 마침표를 찍자 인생이 한 페이지 짜리 종이로 느껴졌다. 억울하고 무기력했다. 쓸모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내려다 본 나는 그저 종이 한 장이었다. 나를 건네며 부디 읽혀지기만을 바라는 난 그저 무력한 토르소였...
1. 난 글을 쓸 때에 사람이 많던 엘리베이터에서 나 혼자만 남았을 때의 작은 해방감을 느끼곤 했다. 2. 물방울에 맺힌 도시의 상은 수없이 많은 물방울을 담아냈다. 톡. 3. 무표정한 양치에 쌓이는 것은 찌꺼기가 아니었다. 하루의 고민이나 선택따위가 뱉어지곤 했다. 4. 멍청히 서 아래만을 바라보는 가로등은 고개가 아팠다. 내가 널 보는 일이 그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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